1. 새로운 신들의 등장
<이터널스(Eternals)>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새로운 서사를 여는 작품으로,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그림자 속에서 지켜온 불멸의 존재 ‘이터널스’가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우주 창조신인 셀레스티얼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로, 고대부터 인간 문명 속에 영향을 주며 살았지만, 디비언츠라는 괴생명체의 위협이 사라진 뒤로는 조용히 인간 사회에 섞여 살아갑니다.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이상 현상이 발생하며 디비언츠가 다시 등장하고, 흩어졌던 이터널스들이 하나씩 다시 소환되면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히 지구를 수호하는 영웅이 아니라, 창조주 셀레스티얼의 계획 하에 ‘지구를 파괴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진실이 드러나면서 갈등과 혼란이 시작됩니다. 이는 기존 마블 히어로들과는 차별화된 신화적·우주적 서사를 전개하며 관객에게 더 복잡한 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2. 불멸의 삶이 만든 균열
이터널스는 겉보기엔 완벽해 보이는 팀이지만, 수천 년간 인간을 관찰하며 살아온 존재답게 각자의 신념과 감정, 내면적 갈등이 존재합니다. 지도자 아작은 집단을 하나로 묶는 리더였지만, 그녀의 죽음 이후 분열은 본격화됩니다. 사르시는 인간을 사랑하지만, 셀레스티얼의 명령을 거스르는 데 망설이고, 이카리스는 의무와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됩니다.
특히 인상적인 인물은 드루이그입니다. 그는 초능력으로 인간을 조종할 수 있음에도, 이를 억제하며 고통스러워합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인간을 직접 통제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는 ‘강한 자의 책임’과 ‘자유 의지’ 사이의 고찰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3. 신화적 구조와 시네마적 도전
클로이 자오 감독은 MCU 역사상 가장 실험적인 연출을 선보였습니다. 천체와 인간, 불멸과 감정을 넘나드는 철학적 주제를 영화 전반에 녹이며, 전통적인 히어로물의 쾌감보다는 신화와 우주의 질서를 탐색하는 시네마로 접근합니다. 광활한 자연 풍경, 손으로 촬영한 장면, 깊은 여백의 미는 마블 영화답지 않은 시청 경험을 제공합니다.
특히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인류 문명 속에 스며든 이터널스의 과거를 보여주는 방식은 역사 다큐멘터리적 형식을 띠며, 신과 같은 존재들이 인간의 성장과 고통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질문하게 만듭니다. ‘신은 침묵해야 하는가’, ‘인간의 고통을 방관하는 것이 도덕적인가’라는 질문은 MCU 팬에게도 새로운 사유의 장을 열어줍니다.
4. 총평 – 마블의 철학적 진화
<이터널스>는 히어로물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형이상학적 주제를 탐색한 작품입니다. 불멸성과 인간성, 창조와 파괴, 자유와 숙명 사이에서 각각의 캐릭터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기존 마블의 흑백 이분법을 넘어 다차원적인 서사를 보여줍니다.
모두가 옳은 일을 하고자 하지만, 그 ‘옳음’의 기준이 다르기에 팀은 갈등하고, 결국 분열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희생과 연대, 그리고 선택의 가치는 명확히 살아있습니다. <이터널스>는 질문합니다. "신이 된 존재는 과연 인간보다 더 윤리적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블록버스터에서 결코 나올 수 없는 깊이이며,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의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