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곱 가지 죄악, 연쇄 살인의 퍼즐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세븐(Se7en)>은 1995년 개봉한 스릴러 영화로, 전통적인 수사극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그 본질은 인간의 죄와 악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7대 죄악(탐식, 탐욕, 나태, 분노, 교만, 질투, 음욕)'을 테마로 벌어지는 연쇄 살인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은퇴를 앞둔 노련한 형사 서머셋과 신참 형사 밀스. 두 사람은 성향도 철학도 정반대지만, 각기 다른 시선으로 사건을 좇으며 범인의 의도와 인간의 본성을 파고듭니다. 살인범 존 도우는 그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의한 죄에 대한 심판을 ‘예술적 퍼포먼스’처럼 실행합니다. 그의 살인은 잔혹하지만, 정교하고 기획적이며 목적을 지닌 '메시지의 수단'입니다.
첫 희생자는 '탐식'을 상징하는 남성으로, 억지로 음식을 먹다 죽임을 당합니다. 이후 이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두 형사는 점차 범인의 논리를 따라가게 되며, 관객 또한 영화가 단순히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마주하는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2. 어둠 속을 걷는 두 형사
<세븐>의 중심에는 두 형사의 대비되는 시선이 있습니다. 서머셋은 냉소적이고 철학적인 인물로, 세상이 이미 썩었다고 믿으며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려 합니다. 그는 사건의 잔혹함에 덤덤하지만, 그 안에 숨은 인간의 고통에는 민감합니다. 반면 밀스는 정의감에 불타는 이상주의자이며, 분노에 쉽게 휘둘립니다.
이 둘의 충돌은 영화의 핵심 갈등이기도 합니다. 서머셋은 범인의 의도를 분석하고, 사건 뒤의 메시지를 해석하려는 반면, 밀스는 단순히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몰입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각자의 한계와 감정적 균열을 드러냅니다.
특히 서머셋이 도서관에서 단테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을 통해 '죄'의 개념을 탐구하는 장면은, <세븐>이 단지 범죄영화가 아니라 문명과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임을 보여줍니다.
3. “상자 안엔 무엇이?” – 충격과 사유의 결말
영화의 마지막 30분은 영화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결말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범인 존 도우는 자수하며, 마지막 두 개의 죄—질투와 분노—를 완성하기 위해 서머셋과 밀스를 외딴 벌판으로 유도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택배 상자가 등장하며, 관객의 심장이 철렁이는 긴장감이 정점에 이릅니다.
상자 안에는 밀스의 아내, 트레이시의 머리가 들어 있었고, 도우는 자신이 그녀를 질투하여 살해했다고 고백합니다. 이로써 그는 ‘질투’를 구현하고, 밀스가 그를 총으로 쏘는 순간 ‘분노’ 또한 완성됩니다.
이 결말은 관객에게 극단적이면서도 피할 수 없는 도덕적 질문을 던집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악을 정의하기 위한 방식이, 또 다른 악이 될 수 있는가?”
존 도우는 비정상적 방식으로 사회의 위선을 고발했지만, 그의 계획은 결국 밀스를 무너뜨리고, 서머셋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범인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허무함을 남기며, 스릴러 장르를 넘어선 철학적 여운을 남깁니다.
4. 총평 – 악을 마주할 용기
<세븐>은 단순한 연쇄살인 영화가 아닙니다. 이는 악의 본질과 인간 내면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장면은 어둡고 눅눅하며, 비는 끊임없이 내려 세상의 부패와 절망을 씻어내지 못하는 듯합니다. 카메라는 잔혹함을 정면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관객의 상상 속에서 더 강력한 공포와 윤리적 질문을 생성합니다.
데이비드 핀처는 절제된 연출 속에 극도의 긴장감을 녹여냈으며,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의 대조적인 연기는 영화의 중심축을 묵직하게 받쳐줍니다. 무엇보다 존 도우 역을 맡은 케빈 스페이시는 차분하고 냉정한 연기로 관객의 불안감을 극대화합니다.
결국 <세븐>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악을 견딜 수 있는가?”
그리고, “세상은 정말 구원 가능한가?”
이 영화는 결코 명쾌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질문을 남긴 채, 침묵 속에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