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꿈인가 현실인가, 한 남자의 내면 여행
<바르도, 거짓된 연대기의 허위 진실(Bardo: False Chronicle of a Handful of Truths)>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만든 가장 자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입니다. 그는 <레버넌트>, <버드맨> 등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이번 영화에서는 ‘자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기억, 정체성, 문화, 죽음에 대한 개인적 성찰을 펼쳐냅니다.
주인공 실베리오 가마는 멕시코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미국에서의 성공 이후 고국 멕시코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영화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고, 몽환적이고 파편화된 방식으로 실베리오의 내면 풍경을 그려나갑니다.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이 흐름은 명확한 플롯보다는 감정의 흐름과 상징을 따라갑니다.
관객은 처음부터 영화가 ‘무언가 낯설다’는 느낌을 받게 되며, 점차 이 불편함이 감독이 의도한 장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르도(Bardo)’는 불교에서 죽음과 환생 사이의 중간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곧 실베리오가 겪는 혼란과 성찰의 세계 그 자체입니다.
2. 국적, 언어, 기억 – 정체성의 균열
실베리오는 미국에서 인정받았지만, 멕시코 사회에서는 ‘고국을 떠난 성공한 엘리트’로 보이며, 그의 정체성은 양쪽 모두에서 완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는 이냐리투 감독 본인이 오랜 미국 생활을 거쳐 겪은 정체성의 분열과 뿌리 없는 감각을 투영한 것입니다.
특히 실베리오가 영어로 말하다가 다시 스페인어로, 그리고 그 중간의 혼합 언어로 대화하는 장면은, 문화적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심리적 갈등을 압축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으며, 과거와 현재, 기억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합니다.
또한 그의 자녀들과의 대화,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환상 속 만남, 태어나지 못한 아이와의 대화는 시간을 초월한 감정의 조우이며, 그가 현실에서 이뤄내지 못한 화해를 환상의 형태로 풀어내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3. 예술, 역사, 자의식 – 무거운 주제의 교차점
<바르도>는 개인적 이야기이면서도, 멕시코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민족 정체성, 미국의 문화적 지배, 언론의 위선 등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실베리오가 멕시코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자신의 꿈속을 걷는 장면은 역사와 개인이 교차되는 지점에서의 혼란을 상징합니다.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지만, 정작 자신은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에 빠집니다. '기억은 언제나 왜곡된다’는 사실 앞에서, 그는 진실조차 하나의 서사임을 깨닫습니다. 이로 인해 영화의 제목에 있는 ‘거짓된 연대기’, ‘허위의 진실’이라는 말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정직한 자각으로 작용합니다.
<바르도>는 때때로 과잉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의식이 강한 장면들을 배치하지만, 이는 감독이 자신을 낱낱이 해체하고, 창작자로서의 한계와 죄책감을 마주하는 진심어린 고백입니다.
4. 총평 – 무너진 경계 위에 남는 감정
<바르도>는 쉬운 영화가 아닙니다. 정통 서사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지루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구조적인 전개보다는 감정의 흐름, 기억의 단편, 철학적 성찰로 이루어진 시적 영화에 가깝습니다.
이냐리투 감독은 더 이상 외부 세계의 드라마를 연출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내면과 기억, 자의식을 무대로 삼아 ‘누가 나인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은 단지 감독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현대인이 갖고 있는 이중 정체성과 불안의 거울이 됩니다.
<바르도>는 결국 관객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진짜 기억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속해 있는가?”
이 질문에 정답은 없지만, 이 영화를 본 후에는 한동안 그 질문이 마음속에 남아 떠돌게 됩니다. 그 자체로 이 영화는 충분히 목적을 달성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