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밝은 낮 속에 숨어든 심리적 공포
<미드소마(Midsommar)>는 북유럽 한 여름 낮의 끝없는 햇살 아래에서 벌어지는 섬뜩한 이교 의식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심리 호러 영화입니다. 보통의 공포 영화가 어둠과 폐쇄된 공간에서 공포를 조성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절대 어두워지지 않는 북유럽 백야의 밝은 풍경 속에서 불편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주인공 대니는 가족의 비극적인 사고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남자친구 크리스티안과 그 친구들과 함께 스웨덴의 외딴 마을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곳은 외부와 단절된 공동체로, 90년에 한 번 열리는 미드소마 축제를 기념하고 있으며, 이 축제의 외견상 평화로운 의식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잔혹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2. 관계의 균열과 여성 주체성의 회복
영화가 공포 이상으로 중요한 중심축으로 삼는 것은 바로 ‘관계’의 해체입니다.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관계는 처음부터 감정의 온도가 다르며, 대니는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크리스티안은 점점 무관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들의 여행은 표면적으로는 공동체 탐방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적 단절을 증폭시키는 여정이 됩니다.
감독 아리 애스터는 이 이야기를 단순한 커플 사이의 균열이 아닌, ‘여성 주체의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합니다. 대니는 초반엔 상실과 불안, 수동성의 아이콘이지만, 공동체와 접하면서 새로운 감정적 소속감을 경험하고 점차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 변화는 특히 영화 후반부의 여왕 의식 장면에서 극대화되며, 여성 서사의 완결로 연결됩니다.
3. 상징과 의식의 무의식적 설계
<미드소마>는 단순한 서사보다 시청자의 무의식에 직접 작용하는 상징과 구도로 관객을 압박합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룬 문자, 민속화풍의 벽화, 약물로 왜곡된 시각 효과, 반복되는 흡입 소리와 숨결, 꽃과 피의 대비는 무의식적으로 공포와 불안을 유도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애티스투파(älvstupa)’라는 노인들의 자살 의식입니다. 이는 공동체의 순환 철학을 반영한 장면으로, 생명의 마감조차 의식으로 받아들이는 마을의 비정한 철학을 보여줍니다. 대니와 크리스티안 일행이 점점 이 마을의 규칙에 휘말리며 인간성과 이방인의 경계가 무너지는 과정은 공포 이상의 철학적 문제를 제기합니다.
4. 총평 – 해방인가 타락인가
<미드소마>는 단지 공포영화가 아닙니다. 이는 관계에서 소외된 한 여성이 새로운 공동체 속에서 자기 존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철학적 심리극입니다. 이 작품은 결국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선택이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혹은 새로운 억압을 낳는가는 질문을 남깁니다.
대니가 크리스티안을 의식의 제물로 선택하는 마지막 장면은 충격적이면서도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는 그녀의 자아 회복이자 감정적 정의의 실현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죄책감과 도덕성을 초월한 결정으로도 보입니다. 이 복잡한 감정이 <미드소마>를 단순한 장르 영화가 아닌, 관계의 철학을 다룬 수작으로 평가받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