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낡은 할리우드의 마지막 불꽃
쿠엔틴 타란티노의 아홉 번째 장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는 196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시대가 저무는 순간을 바라보는 헌사이자 판타지입니다. 주인공은 전성기를 지나 쇠퇴해가는 TV 배우 릭 달튼과 그의 오랜 스턴트맨이자 친구인 클리프 부스. 둘은 과거의 명성을 그리워하며, 급변하는 할리우드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려 애씁니다.
릭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자각에 불안해하고, 이탈리아 스파게티 웨스턴 출연 제안을 망설이다 결국 수락하는 인물입니다. 반면 클리프는 여유롭고 단단한 태도로 릭을 옆에서 묵묵히 지지합니다. 이 두 인물의 우정은 영화의 정서적 중심축으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빛을 잃는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버팀목 삼는지를 보여줍니다.
타란티노는 실제 역사적 사건인 ‘찰스 맨슨 일가의 살인 사건’을 소재로 삼되, 이를 완전히 새로운 서사로 전환함으로써 현실과 영화, 기록과 상상을 섞어 할리우드에 대한 애정과 애도를 동시에 표현합니다.
2. 삶과 영화의 경계, 타란티노의 상상력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구조적으로도 독특합니다. 뚜렷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전통적인 서사 대신, 일상의 단면과 인물들의 심리 흐름에 초점을 둡니다. 관객은 릭이 촬영장에서 겪는 불안, 클리프가 대수롭지 않게 싸움을 벌이는 장면, 샤론 테이트가 극장에서 자신의 출연 영화를 보고 웃는 장면을 지켜보며, 현실보다 영화가 더 따뜻하고 정직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 후반부, 실제 역사에서는 비극으로 남은 샤론 테이트 살인 사건을 타란티노는 완전히 다르게 전개합니다. 맨슨 패밀리가 찾아간 집에는 샤론이 아닌 릭과 클리프가 있었고, 그들은 극단적인 폭력으로 범인들을 제압합니다. 이 장면은 폭력의 미학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타란티노식 정의 구현이자 영화적 대체 역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독이 말하려는 바입니다.
“비극적인 현실이 반드시 그대로 재현되어야 하는가?”
그는 영화를 통해, 그 시대를 실제보다 조금 더 따뜻하게 기억하고 싶은 관객의 욕망을 충족시켜줍니다. 이는 단순한 왜곡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가 할 수 있는 위로입니다.
3. 사라져가는 시대에 대한 찬가
이 작품은 무엇보다 ‘시대의 전환’에 대한 깊은 정서적 울림을 담고 있습니다. 1960년대 후반은 미국 문화가 격변하던 시기였으며, 스타 시스템이 붕괴되고 새로운 영화 흐름이 등장하던 과도기였습니다. 릭은 바로 그 변화 앞에서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그는 진심을 다해 연기하지만, 더 이상 대중의 중심에 서 있지 않습니다. 반면 클리프는 어떤 흐름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갑니다. 이 대비는 영화 속에서 새로운 시대와 낡은 시대, 혹은 허무와 낭만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샤론 테이트의 존재도 중요합니다. 그녀는 영화 내내 실제보다 더 환하게 묘사되며, 가능성과 순수성의 상징처럼 존재합니다. 타란티노는 그녀를 구함으로써 단지 개인의 생명을 살린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꿈과 낭만을 복원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그가 이 영화를 왜 ‘동화(fairy tale)’처럼 연출했는지를 가장 잘 설명해줍니다.
4. 총평 – 과거를 위한 환상의 기록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타란티노 감독의 가장 감성적이고 애틋한 작품입니다. 기존의 그의 필모그래피가 냉소적이고 과장된 폭력으로 채워졌다면, 이 영화는 아련하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봅니다.
릭과 클리프의 우정, 샤론의 미소, 달리는 자동차와 네온사인, 흘러나오는 60년대 음악… 그 모든 것들이 영원히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기록된 한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관객에게 이 영화는 단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 지나쳐 온 한 시대의 감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타란티노는 이 영화를 통해 말합니다.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 영화는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때로 진실보다 따뜻하며, 오래도록 남습니다.